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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에서 의학연구와 의술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로마 고대의학은 다른 문화민족들이 이미 수천 년 전에 뛰어넘은 지점, 원시적·종교적 의료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건강과 질병은 수많은 신들의 몫이었다. 주문과 기도요법, 단순한 외과수술, 민간약, 집 주인의 비전문적 치료, 신전에서의 승려나 집정관에 의한 질병의 추방, 온천지 요양, 주술적인 무악(舞樂)을 통한 방역 등이 의료의 전부였고, 에트루스키(Etruski) 인의 고대 이탈리아 전승의료가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로마에는 승려가 제물로 바칠 동물을 부검하여 그 소견으로 신의 뜻을 예언하던 풍습이 있었고, 이러한 희생부검(consultatoria sacrificia)은 해부병리학의 지견을 넓히는 데 기여한 것이 고작이다.

문헌에 의하면 로마에는 적어도 기원전 451년 악역(惡疫) 유행시에 의사가 있었으며 기원전 4세기 아퀼리아(Aquilia) 법에는 의사가 수술 뒤 치료를 등한히 할 때 책임을 묻는 조항이 있었다.

로마의학의 수준이 이렇게 낮은 데는 로마가 정치권력의 확대와 전쟁에 주력하여 기술과학을 천시한 점과 본래 무인(武人)들로서 신체가 강건했다는 점, 종교에 대한 밀착 등을 드는 학자가 있다. 그러나 공중위생 면에서는 상수도, 대하수구가 건설(기원전 312년)되고 목욕시설, 방습(防濕) 목적의 식림(植林), 부인 음주의 금지, 정신병자를 친족에게 맡겨 살피게 하는 규정 등으로 보아 매우 발달되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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